[본 리뷰]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 /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저자 빅터 프랭클 출판사 아오이 출판사 발매 2020.05.30.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저자 빅터 프랭클 출판사 아오이 출판사 발매 2020.05.30.

 

1. 들어가자 친구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위로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얘기다. 고등학생 때 나는 자주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다. 대학 이야기, 새로 나온 조던의 운동화, 명동 만두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친구는 문득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무섭다고 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온몸이 정지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어.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할아버지가 불과 1년 전에 돌아가셨는데도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니, 죽음을 슬픔이라는 감정을 끌어들이기에는 아직 연결 지점이 부족했다. 그리고 나는 친구에게 아부를 했다. “괜찮아, 우리는 아직 젊어”라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머리를 한 번 휘저었다. 사람이 이렇게 차가워도 되는 줄 알았어. 사람의 온기가 아닌 시원함이 가득하자 미묘한 눈물이 나왔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싫어하셨다. 외할아버지 때 울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나는 슬픔과 우는 행위조차 남들에게 보이고 판단되는 외형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다. 키우던 애완동물도 죽었다. 점점 죽음이 많아졌어. 죽음 자체가 갑자기 떨어진 운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매일 죽어가고 있어. 죽음을 향해 다가가다. 1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모습. 어딘가 다르게 늙어 보인다. 가끔 생기는 작은 주름에 노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꼈다. 허무했다. 별로 이룬 것도 없는 삶인데. 죽기 살기로 공부하고 토익 점수 하나로 울고 웃었는데. 그렇게 들어온 직장에서 낯선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순간이 치욕이었다. 업무명령이라는 취업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사내 근로규정 하에서 성실히 그 역할을 이행할 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하다. 중고 신입을 노리거나 대학원을 가거나 전문 자격증을 따졌다. 그러다가 문득 평균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에서 내 목표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자문했다.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어.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2. 인상깊은 구절 1. 들어가자 친구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위로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얘기다. 고등학생 때 나는 자주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다. 대학 이야기, 새로 나온 조던의 운동화, 명동 만두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친구는 문득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무섭다고 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온몸이 정지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어.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할아버지가 불과 1년 전에 돌아가셨는데도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니, 죽음을 슬픔이라는 감정을 끌어들이기에는 아직 연결 지점이 부족했다. 그리고 나는 친구에게 아부를 했다. “괜찮아, 우리는 아직 젊어”라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머리를 한 번 휘저었다. 사람이 이렇게 차가워도 되는 줄 알았어. 사람의 온기가 아닌 시원함이 가득하자 미묘한 눈물이 나왔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싫어하셨다. 외할아버지 때 울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나는 슬픔과 우는 행위조차 남들에게 보이고 판단되는 외형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다. 키우던 애완동물도 죽었다. 점점 죽음이 많아졌어. 죽음 자체가 갑자기 떨어진 운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매일 죽어가고 있어. 죽음을 향해 다가가다. 1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모습. 어딘가 다르게 늙어 보인다. 가끔 생기는 작은 주름에 노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꼈다. 허무했다. 별로 이룬 것도 없는 삶인데. 죽기 살기로 공부하고 토익 점수 하나로 울고 웃었는데. 그렇게 들어온 직장에서 낯선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순간이 치욕이었다. 업무명령이라는 취업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사내 근로규정 하에서 성실히 그 역할을 이행할 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하다. 중고 신입을 노리거나 대학원을 가거나 전문 자격증을 따졌다. 그러다가 문득 평균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에서 내 목표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자문했다.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어.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2. 인상 깊은 구절

Previous image Next image p.45, 49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했다.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할 능력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수용소 사람들은 가스실로 보내졌다. 이 책의 내용과 별개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관련 증언에 따르면 특정 연령보다 높게 답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15세면 18세에 말하라는 얘기다. 그렇게 본인의 실제 나이 혹은 어리게 말하는 사람은 가스실로 향했다. 한마디로 인생은 좌우됐다. 수용소 생활보다 현대인의 삶이 더 낫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들, 특히 직장인들은 직장 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게는 면역력 저하에서 시작해 심하면 스스로 생활을 멈추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직장인은 매일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위장할지도 모른다.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되면 그 능력을 부풀린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든 온보딩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경제 불황의 시기에 노력은 더욱 심해진다.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있자는 마인드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새 사원은 어디에나 달라붙어 다른 곳으로 점프를 계속 노린다. 불황과 K-직장인의 삶은 치열하게 얽혀 살아남는 대회가 돼 버렸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p.45, 49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했다.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할 능력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수용소 사람들은 가스실로 보내졌다. 이 책의 내용과 별개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관련 증언에 따르면 특정 연령보다 높게 답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15세면 18세에 말하라는 얘기다. 그렇게 본인의 실제 나이 혹은 어리게 말하는 사람은 가스실로 향했다. 한마디로 인생은 좌우됐다. 수용소 생활보다 현대인의 삶이 더 낫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들, 특히 직장인들은 직장 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게는 면역력 저하에서 시작해 심하면 스스로 생활을 멈추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직장인은 매일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위장할지도 모른다.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되면 그 능력을 부풀린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든 온보딩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경제 불황의 시기에 노력은 더욱 심해진다.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있자는 마인드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새 사원은 어디에나 달라붙어 다른 곳으로 점프를 계속 노린다. 불황과 K-직장인의 삶은 치열하게 얽혀 살아남는 대회가 돼 버렸다.

73쪽 73쪽

수용소에서 고된 노동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올 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사람들의 회색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자연 경관은 아름답다. 나는 회사에서 자주 창문을 바라본다. 멀리 보이는 서울의 풍경. 특별하지 않은 건물들의 배열이 즐비한 곳. 건물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 몇 그루가 고개를 내민다. 더욱 시선을 멀리하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역사 관광지를 보게 된다. 나는 사무실에 있는데 마치 거기에 있는 것 같아.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다. 사무실의 악취만이 내 폐 깊숙이 있다. 그러나 마음만은 신선함으로 가득 차 있다. 구직의 나날을 보낼 때, 나는 공원을 걸었다. 낯익은 풍경도 자주 봤다. 여기 이런 나무가 있었나 싶었다. 그리고 흩어진 돌을 보았다. 둥근 조약돌도 있다. 어딘가 부서지고 함몰된 돌도 있다. 공사장에서 흘러나온 벽돌도 보인다. 다시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린다. 어느새 돌무더기에 사람들이 돌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일년.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커다란 돌무더기가 자리를 잡았다. 같은 풍경이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연의 흐름에 인간도 한몫했다. 수용소에서 고된 노동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올 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사람들의 회색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자연 경관은 아름답다. 나는 회사에서 자주 창문을 바라본다. 멀리 보이는 서울의 풍경. 특별하지 않은 건물들의 배열이 즐비한 곳. 건물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 몇 그루가 고개를 내민다. 더욱 시선을 멀리하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역사 관광지를 보게 된다. 나는 사무실에 있는데 마치 거기에 있는 것 같아.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다. 사무실의 악취만이 내 폐 깊숙이 있다. 그러나 마음만은 신선함으로 가득 차 있다. 구직의 나날을 보낼 때, 나는 공원을 걸었다. 낯익은 풍경도 자주 봤다. 여기 이런 나무가 있었나 싶었다. 그리고 흩어진 돌을 보았다. 둥근 조약돌도 있다. 어딘가 부서지고 함몰된 돌도 있다. 공사장에서 흘러나온 벽돌도 보인다. 다시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린다. 어느새 돌무더기에 사람들이 돌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일년.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커다란 돌무더기가 자리를 잡았다. 같은 풍경이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연의 흐름에 인간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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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수용소 사진을 보고 누군가 빅터에게 말했다. 너무하잖아요. 이에 빅터는 대답했다. 「왜?」라고 그들은 사진 속의 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장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가 재밌는 이유가 뭘까? 극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요소는 압축이다. 어떤 인물이 태어나 걸음마를 떼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어떤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 속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표로 옮긴다면 평범할 것이다. (물론 SF 같은 장르는 예외다.) 빅터는 수용소의 잔혹함을 말하기보다는 수용소 내 평범한 삶에 집중했다. 고된 노동과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면서도 그 안에서 종교도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금방 섬뜩해지는 듯한 사진도 누군가의 관점에서 해석된 것이다. 빅터는 저 사진을 보며 묽은 국물 건더기라도 좀 더 먹고 싶었던 과거의 순간을 떠올렸다. 결국 끔찍하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삶의 요소는 적절히 뒤섞인다. 전쟁의 순간이 참혹해도 희로애락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힘든 피난길에도 누군가는 사랑을 했다. 길거리에서 농담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먹을 것이 너무 부족하지만 자기 입맛에 맞지 않아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재단된 사건에 농밀한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완전히 그 순간을 느끼기 어렵게 한다. 마치 매일 엽떡마라맛을 먹었는데 평양냉면의 은은한 맛을 느껴야 할 것 같다. 과거 수용소 사진을 보고 누군가 빅터에게 말했다. 너무하잖아요. 이에 빅터는 대답했다. 「왜?」라고 그들은 사진 속의 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장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가 재밌는 이유가 뭘까? 극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요소는 압축이다. 어떤 인물이 태어나 걸음마를 떼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어떤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 속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표로 옮긴다면 평범할 것이다. (물론 SF 같은 장르는 예외다.) 빅터는 수용소의 잔혹함을 말하기보다는 수용소 내 평범한 삶에 집중했다. 고된 노동과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면서도 그 안에서 종교도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금방 섬뜩해지는 듯한 사진도 누군가의 관점에서 해석된 것이다. 빅터는 저 사진을 보며 묽은 국물 건더기라도 좀 더 먹고 싶었던 과거의 순간을 떠올렸다. 결국 끔찍하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삶의 요소는 적절히 뒤섞인다. 전쟁의 순간이 참혹해도 희로애락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힘든 피난길에도 누군가는 사랑을 했다. 길거리에서 농담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먹을 것이 너무 부족하지만 자기 입맛에 맞지 않아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재단된 사건에 농밀한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완전히 그 순간을 느끼기 어렵게 한다. 마치 매일 엽떡마라맛을 먹었는데 평양냉면의 은은한 맛을 느껴야 할 것 같다.

88쪽 88쪽

빅터는 짧지만 자신의 시간을 가졌다. 일손이 부족한 가운데 나무 덮개에 앉아 먼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간절히 꿈을 꿨다. 수용소 생활은 철저하게 집단이다. 개인이 시간과 공간을 갖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두 함께 식사를 하고 잠이 들었다. 심지어 생리현상을 처리하는 순간에도 항상 감시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짧지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처음 혼자 남겨졌을 때의 고요함과 평온함이 빅터에게는 큰 힘이 된 것 같다. 옛날 기억이다. 논산훈련소에서 주말 종교행사가 있었다. 모두 기독교, 천주교를 선택할 때 나와 일부 동기들은 원불교를 선택했다. 단지, 이것이 쿨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불교를 선택한 사람은 단 4명이었다. 조교와 그리고 4명의 훈련병은 원불교가 있는 어딘가로 향했다. 늘 단체였고 사람들이 떠들던 공간에서 단 5명만 걷다 보니 너무 평온했다. 늘 힘들었던 구보의 순간이었지만 지금은 평온하고 깨끗한 나무와 자연이 있었다. 조수는 말했다. 그냥 걸어라. 우리밖에 없으니까. 훈련병이 단체로 걸을 때는 일종의 구령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다섯 명이던 우리는 각자 걸음걸이로 주말 오전에 어디론가 향했다. 뭘 했는지 기억이 안나. 다만 그 숨막히는 집단인 훈련소에서 나는 풀 냄새가 가끔 떠오른다. 빅터는 짧지만 자신의 시간을 가졌다. 일손이 부족한 가운데 나무 덮개에 앉아 먼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간절히 꿈을 꿨다. 수용소 생활은 철저하게 집단이다. 개인이 시간과 공간을 갖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두 함께 식사를 하고 잠이 들었다. 심지어 생리현상을 처리하는 순간에도 항상 감시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짧지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처음 혼자 남겨졌을 때의 고요함과 평온함이 빅터에게는 큰 힘이 된 것 같다. 옛날 기억이다. 논산훈련소에서 주말 종교행사가 있었다. 모두 기독교, 천주교를 선택할 때 나와 일부 동기들은 원불교를 선택했다. 단지, 이것이 쿨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불교를 선택한 사람은 단 4명이었다. 조교와 그리고 4명의 훈련병은 원불교가 있는 어딘가로 향했다. 늘 단체였고 사람들이 떠들던 공간에서 단 5명만 걷다 보니 너무 평온했다. 늘 힘들었던 구보의 순간이었지만 지금은 평온하고 깨끗한 나무와 자연이 있었다. 조수는 말했다. 그냥 걸어라. 우리밖에 없으니까. 훈련병이 단체로 걸을 때는 일종의 구령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다섯 명이던 우리는 각자 걸음걸이로 주말 오전에 어디론가 향했다. 뭘 했는지 기억이 안나. 다만 그 숨막히는 집단인 훈련소에서 나는 풀 냄새가 가끔 떠오른다.

101쪽 101쪽

전선이 눌렸다. 수용소 사람들은 곧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을 알았다. 이때 나치 감시병은 갑자기 얌전해졌다. 상황이 달라졌음을 인지하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순식간에 다른 입장에 놓였다. 해방의 순간, 바로 그 시점에서 사람들은 어땠을까? 빅터의 경험으로 보면 억압하던 나치 병사들이 갑자기 얌전해졌다고 한다.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해지자 궁여지책이라는 게 친절했다. 자신들도 결국 나치의 피해자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불과 몇 분 전 사악한 눈으로 사람들을 채찍질하던 그 사람들이 말이다. 회사를 퇴사하는 순간 직장 내 사람들과의 관계는 많이 느슨해진다. 물론 동종업계로 이직을 하거나 비슷한 직군에서 일을 한다면 관계의 텐션은 아직도 유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매일 같은 직장 내에서 마주한 그 순간이 지나면 허무할 정도로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은 당신과 내가 계약으로 맺어진 사이야. 이 계약의 저편은 당신과 내가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계약의 관계가 사생활을 넘어 한 사람의 인격체로 승화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기업 내 페르소나가 얼굴에 밀착해 더 이상 떠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전선이 눌렸다. 수용소 사람들은 곧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을 알았다. 이때 나치 감시병은 갑자기 얌전해졌다. 상황이 달라졌음을 인지하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순식간에 다른 입장에 놓였다. 해방의 순간, 바로 그 시점에서 사람들은 어땠을까? 빅터의 경험으로 보면 억압하던 나치 병사들이 갑자기 얌전해졌다고 한다.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해지자 궁여지책이라는 게 친절했다. 자신들도 결국 나치의 피해자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불과 몇 분 전 사악한 눈으로 사람들을 채찍질하던 그 사람들이 말이다. 회사를 퇴사하는 순간 직장 내 사람들과의 관계는 많이 느슨해진다. 물론 동종업계로 이직을 하거나 비슷한 직군에서 일을 한다면 관계의 텐션은 아직도 유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매일 같은 직장 내에서 마주한 그 순간이 지나면 허무할 정도로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은 당신과 내가 계약으로 맺어진 사이야. 이 계약의 저편은 당신과 내가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계약의 관계가 사생활을 넘어 한 사람의 인격체로 승화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기업 내 페르소나가 얼굴에 밀착해 더 이상 떠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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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는 수용소에서 풀려날 날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약속 날짜를 잡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그날이 다가올수록 그는 점점 더 아프기 시작했다. 약속한 날이 지나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세상을 떠났다. 희망은 인간을 살게 한다. 너무 뻔한 말이다. 희망이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찬찬히 돌이켜보면 희망에도 내가 스스로 설정하는 자발적 희망과 타인에 의한 희망이 존재한다. 우선 내가 설정한 희망이라면 그 희망의 주체도 나이고 책임의 소지도 나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타인에 의해 희망이 결정되면 그것은 민중의 아편이 종교라고 말하는 순간과 비슷하다. 그래서 희망이라는 카드는 잘 설정해야 한다. 본인이 인생 방향과 주체성을 가지고 선택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버프와 같기 때문이다.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직을 꿈꿨다. 이 집단에 내가 속해 있다는 이물감이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따라서 나는 이곳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보다는 다른 곳으로 희망찬 도피를 꿈꿨다. 여기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면 괜찮다는 거야. 물론 이런 희망도피가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처음부터 힘을 주면 근육통이 생겨 몸져 눕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회피 성향이 짙어질 때마다 나는 나를 경계한다. 심리적 안정은 희망도피를 통해 얻어진다 해도 개인의 삶에서 아편 같은 희망은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도피가 진정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목표 달성형의 희망이 떠올랐다. 현재의 커리어와 방향성으로 어딘가를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다소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되면서 힘이 나기도 했다. 필요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선택한 것이 온전히 나의 책임임을 자각했다. 희망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회피가 아니라 주체성과 책임이 가득한 것으로. F는 수용소에서 풀려날 날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약속 날짜를 잡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그날이 다가올수록 그는 점점 더 아프기 시작했다. 약속한 날이 지나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세상을 떠났다. 희망은 인간을 살게 한다. 너무 뻔한 말이다. 희망이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찬찬히 돌이켜보면 희망에도 내가 스스로 설정하는 자발적 희망과 타인에 의한 희망이 존재한다. 우선 내가 설정한 희망이라면 그 희망의 주체도 나이고 책임의 소지도 나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타인에 의해 희망이 결정되면 그것은 민중의 아편이 종교라고 말하는 순간과 비슷하다. 그래서 희망이라는 카드는 잘 설정해야 한다. 본인이 인생 방향과 주체성을 가지고 선택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버프와 같기 때문이다.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직을 꿈꿨다. 이 집단에 내가 속해 있다는 이물감이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따라서 나는 이곳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보다는 다른 곳으로 희망찬 도피를 꿈꿨다. 여기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면 괜찮다는 거야. 물론 이런 희망도피가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처음부터 힘을 주면 근육통이 생겨 몸져 눕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회피 성향이 짙어질 때마다 나는 나를 경계한다. 심리적 안정은 희망도피를 통해 얻어진다 해도 개인의 삶에서 아편 같은 희망은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도피가 진정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목표 달성형의 희망이 떠올랐다. 현재의 커리어와 방향성으로 어딘가를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다소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되면서 힘이 나기도 했다. 필요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선택한 것이 온전히 나의 책임임을 자각했다. 희망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회피가 아니라 주체성과 책임이 가득한 것으로.

역설적인 의도를 통해 지나친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면증 환자에게 적절한 약물 치료도 중요하다. 그러나 잠을 자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박적인 주문이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깨어있자고 하자는 것이다.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잠에 빠질 수 있다. 역설의 의도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면접을 보러 갔다고 치자. 면접에서 말을 유려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오히려 말을 못할 수도 있다. 이때 차라리 말이 없자고, 편하게 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하면 심적으로 안정이 찾아오고 면접에서 유려한 입담을 보여줄 수도 있다. 돈을 벌고 싶다면 돈을 떠나야 한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하는 사람은 조심하세요. 그는 완전히 돈에 미친 놈이니까. 최근까지 계속되는 투자 붐에서 역설의 의도를 찾는다. 돈에 대한 욕망이 깊어질수록 돈에 대한 집착이 커진다. 따라서 거래 원칙을 어긴 매매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반면 오히려 돈 자체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 돈을 벌기도 한다. 돈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풍파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욕심나는 순간이 있다면 결코 투자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본인이 감내하고 무시할 만한 돈이 아니라 온갖 열정을 쏟아부은 자금이라면 보다 안전한 운용을 해야 할 것이다. 역설적인 의도를 통해 지나친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면증 환자에게 적절한 약물 치료도 중요하다. 그러나 잠을 자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박적인 주문이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깨어있자고 하자는 것이다.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잠에 빠질 수 있다. 역설의 의도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면접을 보러 갔다고 치자. 면접에서 말을 유려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오히려 말을 못할 수도 있다. 이때 차라리 말이 없자고, 편하게 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하면 심적으로 안정이 찾아오고 면접에서 유려한 입담을 보여줄 수도 있다. 돈을 벌고 싶다면 돈을 떠나야 한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하는 사람은 조심하세요. 그는 완전히 돈에 미친 놈이니까. 최근까지 계속되는 투자 붐에서 역설의 의도를 찾는다. 돈에 대한 욕망이 깊어질수록 돈에 대한 집착이 커진다. 따라서 거래 원칙을 어긴 매매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반면 오히려 돈 자체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 돈을 벌기도 한다. 돈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풍파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욕심나는 순간이 있다면 결코 투자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본인이 감내하고 무시할 만한 돈이 아니라 온갖 열정을 쏟아부은 자금이라면 보다 안전한 운용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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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의미는 없습니다. 전생과 내세에서 내가 현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아니면 제가 현재의 생활 속에서 그대로 소멸해버리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지하철에 있는 할머니는 소리쳤어요. 여러분 성경에 다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져 영겁의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다소 공격적인 할머니의 포교에 버릇이 되었다. 오늘따라 에어팟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제가 싫어질 정도였어요. 하지만 인생에 대해 돌아봤어요. 현재의 삶을 희생하고 사후세계에서 좋다면 현재의 어려움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입니다. 여러 종교적 관점이 뒤섞여 나를 혼란스럽게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 세상에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신의 존재, 종교적 회귀 등 다양한 관점을 통해서라도 의미는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미란 종교처럼 뉴진스의 팬클럽 활동이 삶의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처음으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의미조차 주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만든 의미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다면 그 의미는 한 인간의 삶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유럽에 유학하고 있을 때, 저는 매일 의미가 없다고 말했어요. 그냥 먹고, 자고, 싸는 그런 행위의 반복에 머리가 아팠습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려고 고생을 하는지 생각했어요.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요. 매일 계속되는 편두통과 음주로 인해 인생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삶의 의미를 더 이상 이 공간에서 찾을 수가 없었어요. 돈이라도 많이 주는 학업과 직종이라면 몰라도 소명의식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동경해 온 생활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철저하게 의미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나를 재단했어요. 여기서 버티는 것이 맞고 나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저는 피폐해져갔습니다.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서 한 말에 내 뜻은 죽었어요. 저를 더 소중히 여겨야 했어요.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했어요. 타인에 기반한 감정에 치우쳐 의미를 각색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처음으로 저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의미를 되찾고 있습니다. 그래도 달라졌다고 느끼긴 해요. 의미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눈을 감고 형태를 만지면서 상상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지금은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마침 언어로 정의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다양한 행동과 삶의 지난한 점을 하루하루 버텨나갈 때 의미에 대한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뿐입니다. 인생의 의미는 없습니다. 전생과 내세에서 내가 현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아니면 제가 현재의 생활 속에서 그대로 소멸해버리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지하철에 있는 할머니는 소리쳤어요. 여러분 성경에 다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져 영겁의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다소 공격적인 할머니의 포교에 버릇이 되었다. 오늘따라 에어팟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제가 싫어질 정도였어요. 하지만 인생에 대해 돌아봤어요. 현재의 삶을 희생하고 사후세계에서 좋다면 현재의 어려움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입니다. 여러 종교적 관점이 뒤섞여 나를 혼란스럽게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 세상에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신의 존재, 종교적 회귀 등 다양한 관점을 통해서라도 의미는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미란 종교처럼 뉴진스의 팬클럽 활동이 삶의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처음으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의미조차 주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만든 의미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다면 그 의미는 한 인간의 삶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유럽에 유학하고 있을 때, 저는 매일 의미가 없다고 말했어요. 그냥 먹고, 자고, 싸는 그런 행위의 반복에 머리가 아팠습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려고 고생을 하는지 생각했어요.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요. 매일 계속되는 편두통과 음주로 인해 인생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삶의 의미를 더 이상 이 공간에서 찾을 수가 없었어요. 돈이라도 많이 주는 학업과 직종이라면 몰라도 소명의식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동경해 온 생활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철저하게 의미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나를 재단했어요. 여기서 버티는 것이 맞고 나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저는 피폐해져갔습니다.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서 한 말에 내 뜻은 죽었어요. 저를 더 소중히 여겨야 했어요.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했어요. 타인에 기반한 감정에 치우쳐 의미를 각색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처음으로 저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의미를 되찾고 있습니다. 그래도 달라졌다고 느끼긴 해요. 의미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눈을 감고 형태를 만지면서 상상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지금은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마침 언어로 정의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다양한 행동과 삶의 지난한 점을 하루하루 버텨나갈 때 의미에 대한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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